~단 청 동 영 상~/벽화 이야기

달마대사 “짚신 한 짝 남기고”

단청단청 2008. 12. 28. 10:03

“짚신 한 짝 남기고”
중국불교가 교종의 교화로 의해 대단한 기세로 확산 되어가고 선종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있을 무렵. 그 때 중국 선종의 시조이신 달마스님께서 인도내의 모든 교화를 제자들 에게 맡기시고 중국으로 건너오고 계셨다. 스님께서 중국으로 가는 도중에 금릉(금릉)이란 곳에 닿았는데 이곳에서 당시 양 나라의 왕이던 무제를 만나게 되었다. 당시 무제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많은 절과 탑을 세우고 갖가지 공양을 해 오던 터였으므로 아주 당당한 자세로 스님을 맞이하였다. (스님 스님께서는 무었을 가지고 이 먼 길을 오셨습니까?) [나는 아무 것도 가져온 게 없습니다.] 당시 교종의 풍토에 젖어있던 무제는 교리적인 신기한 법문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스님의 대답에 어리둥절해졌다. 무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며(나는 이 나라의 왕으로서 수없이 많은 절과 탑을 쌓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는데 후에 어떠한 공덕이 있겠습니까?) 하고 물었다. [전혀 없습니다.] 스님의 단호한 말에 무제는 깜짝 놀라서(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?) 하고 물었다. [맑은 지혜는 그대로의 밝음으로 두루 비칠 뿐 하고자 해서 구해지는 게 아니지요] (그러면 맑은 지혜란 무엇입니까?) [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.] 대체 내 앞에 서있는 당신은 누구시오?) 무제는 이 문답에서 달마스님의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헤어졌다. 달마스님은 무제와의 문답을 통하여 중국불교의 실상을 파악하고 낙양의 숭산으로 들어가 소림사라는 작은 암자를 짓고 9년 이라는 시간을 면 벽 좌선으로 보냈다. 달마스님의 출연으로 선종은 중국불교계에 차츰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. 이후 선종의 세력이 확산되자 이에 달마스님을 시기한 교종스님들이 수차례 음식에 독약을 넣어 스님을 죽이려 하였다. 그러나 그 때마다 독을 토해내어 무사하였으나 그러기를 몇 번, 후에는 스님 스스로 그것을 물리지 않으셨다. 법은 이미 혜가(혜가)에게 전했고 이곳에서의 인연이 다했음을 판단했기 때문이다. 스님은 [내가죽으면 이대로 짚신을 신겨서 묻어 달라] 고 유언을 남기시고 여러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앉은 자세로 열반에 드셨다. 그로부터 3년 후, 위나라의 사신 송운(宋雲)이 인도에 갔다가 오는 길에 촉륭고개에서 달마스님을 만났다. 해질녘 어스름 할 때 짚신 한 짝을 어깨에 둘러맨 채 맨발로 털레털레 걸어오는 것이었다. 송 운이 놀라 (스님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?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?) 하고 물었는데 [어허, 중국에서 인연이 다한 것 같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오] 스님과 헤어져 중국 땅으로 들어와 양 무제를 만나게 된 송 운은 그제 서야 달마스님이 입적한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라 촉륭고개에서 스님을 만난 얘기를 상세하게 전한다. 너무도 놀라 사람을 시켜 스님의 묘를 파 보니 짚신 한 짝만 남아있는 채, 육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달마스님은 짚신 한 짝 주장자 끝에 매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.

   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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